혼합된 역사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조선인 김대건: 신앙과 문명의 길목에서

memoguri8 2025. 4. 17.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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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조선이 만난다고?

바르셀로나, 지중해 연안의 예술과 역사,
그리고 축구로 유명한 스페인의 대표 도시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조선의 역사와 교차한 한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 인물은 바로 김대건(1821~1846).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이자 순교자,
그리고 19세기 조선과 서양 세계를 연결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사제 서품을 받기 위해 유럽에 파견된 조선인 최초의 외국 유학생이었으며,
그 여정 중 일부가 바르셀로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한 개인의 생애를 넘어, 조선의 개방과 문명 충돌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 김대건 신부는 왜 유럽으로 갔을까?

조선 후기의 천주교 박해는 매우 가혹했습니다.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를 거치며
수많은 신자와 선교사들이 사형을 당하거나 유배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신앙은 비밀리에 전파되었고,
이를 지도할 조선인 사제가 필요하다는 교회의 판단에 따라
1836년, 어린 김대건은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프랑스 선교사들과 함께 신학과 라틴어, 철학, 과학을 익히며
성직자로서의 훈련을 받았고,
이후에는 필리핀, 포르투갈, 프랑스를 거쳐 유럽 대륙을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 바르셀로나의 성당과 김대건의 연결 고리

김대건이 유럽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장소는 프랑스 파리 근교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 그는 바르셀로나와 인접한 지역을 통과하며,
지중해 연안의 가톨릭 문화와 라틴 유럽의 정체성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성가정 성당(Sagrada Família)**처럼 화려한 성당은 당시 존재하지 않았지만,
고딕 양식의 바르셀로나 대성당(Catedral de Barcelona),
그리고 가톨릭 신학의 본산이었던 수많은 수도원과 신학교를 통해
김대건은 신앙의 중심이 서양에 있다는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는 라틴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까지 습득하며
언어와 신앙, 정치의 복합성을 스스로 이해하고 해석한 유일한 조선인이었습니다.


🌍 김대건, 바다를 넘어선 문명의 교차점에 서다

바르셀로나는 19세기에도 국제 해양 교류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항구 도시는 서양의 해상 제국주의와 가톨릭 세계관의 전파 거점으로 기능했고,
김대건 역시 이러한 **세계사의 흐름 안에 편입된 조선의 ‘외교적 상징자’**였던 셈입니다.

 

그는 동양의 조선과 서양의 교회를 연결하는 살아있는 통역자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바티칸과 직접 서신을 주고받았고,
조선의 정치 상황을 설명하는 외교 문서를 라틴어와 프랑스어로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김대건은 단순한 종교인이 아니라
세계 질서 속에서 조선을 설명할 수 있었던 선구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 바르셀로나에서 느낀 신앙의 중심과 조선의 외로움

김대건이 유럽 교회 문명을 접했을 때, 그는 분명히 자기 나라 조선의 외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선진 문명, 조직화된 종교 체계, 국제적 네트워크 속에서
조선은 고립된 세계였습니다.

 

그가 가졌던 외로움은 단지 문화적 충격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조선의 폐쇄성과 개방의 딜레마를 응축한 감정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성당은 장대하고 고귀했지만,
그 속에 있는 자신은 그리스도교의 동방 끝에서 온 이방인,
**해금정책에 갇힌 나라에서 온 ‘숨은 제자’**였던 것입니다.


⚖️ 김대건과 식민주의: 신앙인가 침투인가?

한편, 김대건의 활동은 서양 종교의 동아시아 침투와 맞물려
식민주의적 도구로 해석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아니라,
자발적인 선택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조선인이었으며,
박해 속에서도 조선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조국에 남아 사명감 있게 활동했습니다.

 

결국 그는 병인박해가 벌어지기 전에 순교했고,
그의 유해는 지금도 미사리 김대건 성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 순교자 김대건, 스페인의 교회에서 기려지다

오늘날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유럽 가톨릭 교회에서는
**김대건 신부를 ‘아시아 순교자’, ‘젊은 사제의 모범’**으로 기리고 있습니다.

 

특히 2021년 김대건 탄생 200주년을 맞아,
교황청과 세계 가톨릭 커뮤니티는 김대건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기념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일부 스페인 신학교에서는
김대건의 생애와 조선 천주교 박해에 대한 세미나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단지 한국인 성인이 아닌, 세계 보편 교회가 인정한 아시아의 인물이 된 것입니다.


✨ 바르셀로나 여행 중 만나는 김대건의 흔적들

혹시 당신이 바르셀로나를 여행한다면,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니라 김대건이 지나갔던 흔적에 주목해보세요.

  • 고딕지구의 오래된 성당들
  • 바르셀로나 대성당 내부의 사제 좌석
  • 19세기 유럽 성직자들이 사용한 미사 의식과 공간

그 속에는 분명히 김대건이 바라보았던 어떤 시선,
그리고 조선과 유럽이 만나는 접점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 마무리하며: 김대건, 동서양 사이의 다리

김대건은 단지 종교의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역사와 문명, 국가와 개인, 신앙과 정치가 만나는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지만,
그가 외로운 조선의 미래를 위해 믿음을 선택한 사람이라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세계 속 한국의 정체성과 문화 교류를 성찰하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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